차라리 수개월 지난 간첩사건을 발표하던 정치가 그립습니다. 1970년대에는 가끔 대서특필, 대문짝만한 기사가 신문짝만하게 보도되었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대한민국 경제분야에서 암약(暗躍)하던 간첩단을 일망타진했다는 보도입니다. 테이블에 앉아 진술하는 5명 정도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사진은 늘 원경으로 찍어서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상정보를 감추기 위한 것 외에 다른 이유도 숨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암약이란 '어둠 속에서 날고 뛴다는 뜻으로, 남들 모르게 맹렬히 활동함을 이르는 말이고 폭력 세력의 암약을 그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970년으로 돌아가면 1953전 정전후 불과 13년입니다. 남과북이 전쟁을 잠시 휴전한 것이니 간첩이 드나들고 무장공비가 출몰하고 그 전에는 김신조와 그 일당이 대통령을 시해하기위해 청와대 인근까지 구보로 달려왔던 시기입니다. 수년전에 청와대 뒷산에서 당시의 총알자국이 소나무에 박힌 것을 흰색 페인트로 표시해둔 현장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초등생시절에 방송에서 본 이른바 1.21사태의 현장을 목도한 것입니다.
무장공비는 실제상황이니 온 국민이 긴장하고 뉴스를 지켜보았고 무장공비가 나타난 강원도 지역의 국민들은 그 공포가 컷을 것입니다. 이와는 다른 이른바 간첩단 사건이 더러 가끔 발표되곤 했는데 이때마다 정치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고등학생시절에 들었습니다. 정부의 정치와 행정이 큰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간첩단 사건을 터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신문을 펼쳐도 더 큰 대문짝만하게 기사를 냈다는 것이지요.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렇게 따라갔습니다. 정치적인 이유와 전략이 깔려있다고 했습니다. 10.26이후 교복자유화, 컬러TV도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골키퍼를 했다는 대통령 시절에 프로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프로축구는 한참 늦게 출범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을 면담하여 프로스포츠의 중요성을 설명하겠다는 인사는 당연히 축구분야 사람일 것으로 알고 비서실에서 일정을 마련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송도신도시, 인천국제공항은 지방자치단체의 국장(당시 서기관)이 제안하여 1차 검토에서 제외되었다가 대통령 정권 교체기에 슬며시 보고하자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과정이야 어떠했든 오늘날의 상황으로 보면 인천국제공항을 그 당시에 착공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은 크게 밀려났을 것이고 오늘날의 세계적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연수원장님의 특강을 들어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이제라도 인천공항에 당시의 기획안과 박연수 인천광역시 건설국장, 당시의 이재창 인천광역시장 사진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시대를 자르고 구획해서 점수를 매기거나 평가를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잘한것은 칭찬하고 부족한 것은 지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직자로 근무하면서 지녔던 기본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글을 매듭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자리는 이 자리에 오고싶어했던, 배치하고 싶어했던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물리치고 차지한 것이니 최선을 다해서 일해야 한다는 자세입니다. 더 잘할 수 있는 공무원 동료가 많은데도 이 자리에 보임되었으니 문자그대로 신명을 바쳐서 일해야 한다는 자세입니다.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보임된 공무원들은 그 자리가 당연한 권리, 권한인양 생각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요즘 정치권의 행태와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자신이 최고의 정치인이고 이 자리를 위해 이시대에 태어난 것인양 의기양양입니다. 도무지 더 훌륭한 정치인을 대신하여 지금 일한다는 겸양지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잘난 박사가 정치권에 참으로 많습니다. 칼은 갑속에 있을때 그 권위를 발휘합니다. 벌이 침을 쏘을때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날아가 달겨듭니다. 자신의 목숨은 귀하고 다른이의 명예는 가벼이 여기는 것은 정도가 아닙니다.
법이 물을 흐르듯 가는 것이라면 정치는 바른 길로 흐르도록 앞장서서 인도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벼가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선인들이 말했습니다. 정치인이 고개를 들고 바라바리 흔드는 모습보다는 가을들판의 황금물결처럼 바람이 보이지 않아도 풍향과 부러드룬 흐름을 국민들은 보고싶어 합니다. 있어도 없는 듯하고 없어도 어딘가에서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그런 여의도 정치인이 299명보다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