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백두산 정상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반쪽은 압록강으로 다른 반쪽은 두만강으로 흘러가 서해바다로 또는 동해바다로 흘러갈 것이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 빗방울은 어쩌면 서해와 동해에서 증발되어 하늘 높은 곳에서 만나 물방울이 되었고 다시 바람에 의해 한반도 상공과 만주 하늘을 떠돌다가 어느 순간 번개와 천둥속에 흔들려 낙하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물방울을 더하고 보탠 후에 백두산 정상에 떨어진 것이겠지요.
그리고 반 방울의 물이 다른 물과 함께 압록강을 흐르고 수풍발전소의 낙차를 통해 단련한 후에 서해바다로 흘러 다시 1/4방울은 중국 산둥반도로 가고 다른 1/4은 연평도나 백령도로 가서 조기와 꽃게와 조개를 만나 진흙속의 영양소와 어울려 물고기의 세포가 되기도 하고 미역 줄기속 영양소의 일부로 자리하겠지요.
어느 날 어부의 나룻배에 실려온 미역은 해안가 백사장에 누워 하늘의 태양으로 말려지고 포장되어 시장으로 나갈 것입니다.
1년전 백두산에 떨어진 물방울의 절반이 압록강으로 흘러 백령도 인근에 이르러서 미역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연평도의 조기의 세포속에 스며들어 있다가 그물망에 걸려 노량진수산물시장을 거쳐 수원 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되어 어느 날 아내의 눈에 들러 3마리 1만원에 사서는 소금 뿌려 팬에 구워 식탁에 오르고 젓가락을 들어 그 고기를 먹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연관 지어보면 이 세상을 살면서 남과 충돌할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아파트 30*동#09호에서 같은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시간을 기다려 같은 꼭지로 샤워를 하고 같은 압력솥에서 퍼낸 밥에 카레를 두 국자 부어 넣고는 맛깔나게 비벼서 함께 먹고 있습니다.
매일 보는 드라마는 달라도 1박2일, 대박이(슈퍼맨이 나타났다), 무한도전, 봉숭아학당, 그리고 전국노래자랑 정도는 함께 보는 프로그램인 것을요.
수박을 사면 1/4을 잘라 할아버지 드리러 갈 때 손자손녀 신바람나서 뛰고 사위는 어쩌다 한번 다녀오는 것 또한 같은 시대 같은 동선으로 함께합니다. 이 또한 행복하고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출근길에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 배출을 돕는 것도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하숙집 아주머니가 총각에게 음식물 쓰레기 버려달라 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 모든 인연이 원활하게 운용되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 있는 것이고 이를 보다 차원높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종교가 있고 종교지도자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은 일요일을 主日(주일/ 기독교에서, ‘일요일’을 이르는 말. 예수가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이라 하여 牧師(목사)님의 인도속에 열심히 기도합니다.
불교신자는 사찰에 가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대웅전에 올라 108배를 통해 자신의 업을 넘어 열반의 경지을 도모하고자 노력합니다.
종교가 아니어도 所信(소신)을 가지고 내 삶의 가치를 드 높히는 분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산 깊은 마을의 숲속에 사시는 기인들 말입니다. 갈 데까지 가 보자고 하십니다.
초등학교 5학년 쯤에 直角(직각/두 직선이 만나서 이루는 90도의 각. ‘∠R’로 나타낸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맑은 호수 위에 추를 드리우면 그 실과 수면이 이루는 직각이 정확한 90도라 하셨습니다.
어린 학생은 지난번 자연 시간에 지구는 둥글다고 배웠으니 그 수면도 가운데는 약간 곡면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습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수면이 정말로 수평은 아닐 것입니다. 지구는 둥굴다 하셨고 먼 바다에서 다가오는 배는 처음에 깃대만 보이다가 나중에는 뱃전이 보이니 말입니다. 그 뱃전에서 刻舟求劍(각주구검)이라는 말이 나왔고요.
각주구검 [刻舟求劍] : 배의 밖으로 칼을 떨어뜨린 사람이 나중에 그 칼을 찾기 위해 배가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칼을 떨어뜨린 뱃전에다 표시를 하였다는 뜻에서, 시세의 변천도 모르고 낡은 것만 고집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를 통해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나서 산수 시간에는 수평과 직각을 말씀하신 담임 선생님의 모순을 어찌해야 할 것입니까.
초등학교는 담임선생님 한 분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시고 학생의 신상 문제에서 육성회비, 기성회비, 수업료 미납까지 다 챙기시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또 하나,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본능적인 일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며 코끼리가 봄에 지나온 길을 가을에 다시 찾아간다니 이 또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솔직히 우리도 어느 사무실에 들어갈 때 어제까지 걸려있던 달력이 사라진 것을 육감으로 알게 되지요. 달력은 자주 보는 것이니 없어진 것을 금새 알수 있겠다 하신다면 구석에 방치되었던 소화기가 사라진 그 형상도 기억해내는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자주 느끼실 것입니다.
혹시 데자뷰(deja vu)고도 하지요. 사전에서는 ‘처음 해 보는 일이나 처음 보는 대상, 장소 따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현상. 뇌가 저장된 기억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기억의 착각이나 신경 세포의 혼란으로 정보 전달이 잘못되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일은 전에 어디에선가 겪은 것인데 하는 상황 말입니다. 누구는 이런 상황을 전생이라고도 합니다. 전에 뵌듯 한데 우리가 어디에서 만났나요? 참으로 인상이 낯이 익으신데 어느 고등학교 나오셨나요?
일상의 생활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만 이 또한 前生(전생)이거나 과거의 因緣(인연)이거나 아니면 혹시 미래에 다시 만나는 '터미네이터'의 테마와도 같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 아침에 내 앞뒤를 옆에서 내달리는 수많은 차량도 전생이거나 어느 과거에 다들 함께하며 술잔을 나누던 사람이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가까이 다가왔다고 앞길을 막고 천천히 간다고 난폭운전, 보복 운전을 하거나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야구방망이를 꺼내야만 하겠는지요.
백두산 정상의 물방울이 이별하는 것도 운명이고 동해와 서해 바다를 돌아 목포 앞바다 미역줄기에서 두개의 물방울이 만나는 것도 운명적인 것이라면 오늘 아침에 만나고 저녁에 다시 보는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과 차량과 바람과 빗방울 모두를 나의 운명, 삶의 동반자로 공해 소중스럽게 대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꽝 하고 추돌한 두 대의 승용차가 혹시 전생에 물방울이었고 백두산 정상에서 이별한 후 5만년만에 다시 만난 사이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요?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